리소님의 다른 글 들은 이 곳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몸,말,글
이 글은 물론 허락받고 옮겼음을 밝힙니다^^;
오전에 안산엘 다녀왔다. 한의원하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핑계는 한 달 전부터 아프기 시작한 팔꿈치(일명 테니스 엘보라고 하는 병, 테니스 채는 대학 체육시간때 만져 본후 본 기억도 없지만 무거운걸 잘못들었을 때도 생기는 질환이란다.)에 침을 맞으러 간 것이지만 이런 날 집에 혼자 있기가 겁나게 싫어서였다. 하루 종일 CD 플레이어를 돌리고, 일부러 두껍고 여러운 책(전체주의의 기원, 한나 아렌트)을 펴 놓고 코를 밖아도 보고, 남편이 맘 심난할 때 영어공부나 하라며 보내준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프린트를 책상 가운데 펼쳐 놓아도 마음 둘 곳이 없다. 탈출을 시도했고, 그곳이 친구네 병원이다. 킬링 타임은 되었지만 돌아오는 열차칸에서 또다시 숨이 턱턱 막혀왔다. 누군가가 목을 죄어 오는 답답함...
친구가 물었다. 왜 우리가 진거야?
옛날 어른들 말에 총으로 흥한놈은 총으로 망하고, 칼로 승한 놈은 칼로 망한다고 했다. 인터넷을 배회하는 수 많은 개혁 네티즌이 들으면 기분나쁠지 모르겠다. 얼마전부터 우리가 인터넷 때문에, 아니, 인터넷에 갇혀 있다 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은 인터넷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이버 공간은 시공의 한계를 가뿐이 뛰어넘어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었고, 인터넷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된 패러다임은 그 낯섬 만큼이나 신선함으로 인터넷을 할 줄 모르는 유권자들마져 사로잡는 마력을 발휘했다. 그 힘으로 우리는 선거에 이겼다.
그 뒤 인터넷의 힘을 깨달은 수구기득권 세력이 돈과 조직으로 인터넷으로 밀고 들어왔고 우리가 이들에게 밀려 대선에서 결정적으로 패했다는 식의 분석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류의 주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2000년 부터 2002년 인터넷 여론이 오프라인 여론을 주도할 때 조차도 가끔 게시판에 게진되는 의견과 실제 여론이 다르게 나타나는 예를 자주 목도했다.당시 노사모 게시판에서는 크고 작은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특히 노사모의 운영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중앙위원회의 결의로 몇 번인가 인터넷 투표가 이뤄졌다.기이한 것은 게시판 상에서는 해당 사안에 대해 반대와 비판글이 상대적으로 논쟁을 주도했지만 막상 투표를 해보면 결과는 찬성이 다수였다. 이런 경험에서 사이버 게시판에서 눈으로 보이는 여론과 실재 다수의 생각이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올해 신당 경선부터 시작해 대통령 선거에 이르는 기간 만큼 정치 웹진에 올라온 글들, 그 글에 대한 추천 점수로 상징되는 사이버 여론과 실재 선거 결과가 이토록 극심하게 엇갈린 적은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신당 경선 당시 인터넷에서는 유시민이 이미 대통령 후보였다. 하지만 그는 간신히 예선을 통과했고 두 번의 지역 본선전에서 하위권에 머무르자 사퇴했다.
대선 기간동안 개혁 네티즌들이 들락거리는 곳이라면 아마도 문국현이 '이미' 대통령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결과는 겨우 6%남짓이었다. 그것도 선전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대통령은 '선전'해서 되는 것은 아니며, 겨우 그 정도의 '선전'을 위해 단일화를 거부했다는 말인지 묻고 싶다. 물론 단일화해도 우리가 이명박을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다 했을 때 결과 앞에 덜 허무해 지는 것 아닌가? 문국현은 우리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선 전체 판을 놓고 봐도 그렇다. 인터넷에서 이명박은 확실히 밀렸다.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패러디물에서 그는 형편없는 사람이었다. 여섯살짜리 꼬마도 이명박은 거짓말쟁이라고 알 만큼 인터넷 공간에서 이명박은 혐오의 대상이었고 도대체 누가 그에게 표를 줄까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다 알다시피다.
그렇다. 문제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도 졌을 뿐만 아니라 더욱 결정적으로 오프라인을 무시하다 졌다.
가상 공간이 아니라 현실 공간에서 누가 더 많은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며, 이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찜질방에서 직장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설득하고 스킨십을 나누며, 투표장까지 가게 하느냐는 사이버 상에서 이명박 비판 글을 베스뷰 만드는 것보다 더 결정적이다.왜냐면 모든 선거는 아직까지 온라인이 아니라 내 발로 찾아가 내 손으로 찍는 아날로그 현실에서 얻은 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2002년에서 5년이 경과하는 사이 인터넷은 이제 전혀 새롭지 않게 되었다. 우리에게 만 프리미엄이 있는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열세다.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한나라당은 알바들을 대규모로 고용했다는,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루머가 돌 만큼 사이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덕분에 그들의 영향권 아래 있는 소위 보수 인터넷 매체들의 방문자 수는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보다 많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인터넷만 관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했다. 아직 그들은 3대는 커녕 1대 조차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다. 지난 10년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은 그들의 나라였다. 그들이 가진 물적 토대는 여전히 막강하다. 거기다 복수심까지 더해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나?
정말 그런 식의 매표행위가 있었다면 그건 경선 때나 경선 후에나 범죄행위이고 처벌 대상이어야 한다. 그러나 경선 끝나고 9명 후보 모여 사진 한 방 찍고 나자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되었다. 애초부터 그 따위의 조직 동원은 없었거나, 아니면 신당 경선 후보 모두 범죄 행위를 눈감아 주는 공범자이거나다.
신당 경선에서 정동영의 승리는 분명 조직의 승리다. 그는 일찌감치 대통령을 목표로 했고, 그런만큼 조직을 꾸리는데도 신당 의원들 중에서 가장 열심이었다. 정동영의 소위 '정통'은 신당 경선에서는 위력을 발휘했다. 그들을 욕하고 싶은가? 그러면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그들처럼 헌신적으로 사람들을 만나 당신의 지지자를 위해 한 표를 부탁한 적이 있는가"라고. 하지만 정통은 대선은 넘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들의 수는 한나라당의 오래되고 막강한 정치머신에 뒤졌다. 거기다 우리편들은 대부분 여전히 사이버에서만 놀았다. 그것도 갈기갈기 찢어져서.
'조직'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다. 야당의 전당대회장에 뛰어든 용팔이의 악명, 선거때마다 등장하던 고무신에 대한 좋지않은 기억, 보스의 명 하나로 전당대회장에서 찍을 사람을 바꾼 거수기의 추억은 자발적 참여의 기준을 과할만큼 엄격하게 제한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정당 정치'란 바로 정치적 지향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지지자를 조직하고 그 힘으로 선거에서 표를 얻어 집권하는 것이다.
미국의 선거는 참 요상해서 미국사람이라고 다 대통령 선거 투표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유권자로 등록한 사람만 투표할 수 있다. 민주당아니 공화당 모두 자신의 잠재적 지지자들을 끌어 모아 유권자로 등록시키는데 열심이고, 이 일만 하는 조직이 따로 있을 정도다. 지난 신당 경선에서 제기된 프레임에 따르면 미국의 이런 선거는 "망할놈의 조직동원"으로 민주주의가 아니겠지만.
또 한가지. 2002년 대선 승리는 온라인 전에서의 선전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노사모는 온라인 조직이지만 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그 해 선거에서 노사모가 한 일은 소위 '몸빵'이라 불리는 '자원봉사'였다는 것을. 노사모의 희망돼지는 사이버에서 유통되는 도토리를 모은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돼지저금통을 손에서 손으로 나눠주고, 거기에 진짜 돈을 담아 나른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는 까마득히 잊었다. 그래서 졌다.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철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텔레비젼이 보급되었다고 라디오가 자취를 감춘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리될줄 알았지만 자동차 시대에도 장거리 물류와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텔레비젼이 HD로 발전을 하든 말든 라디오 시대도 역시 끝나지 않은 것처럼 선거에서 조직의 중요성은 덜해지지 않았다. 단지 조직의 대상이 현실만이 아니라 사이버공간으로까지 확장된 것 뿐이다.
이제 더이상 새로움은 인터넷에 있지 않다. 다음 선거의 불루오션은 오프라인에 있다. 진보 개혁세력이 이기고 싶거든 차별성 없어진 온라인에만 메달려서는 안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자발적 지지자들을 엮어 국민들과 얼마큼 자유롭게 소통하는 열린 진지 조직을 오프라인에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도 우리는 질 것이다, 슬프지만.


















